07/01/2026
[칼럼] 디지털보호주의의 장벽을 넘는 길(로리더 2026.1.6)
거대한 장벽이 다시 세워지고 있다. 과거의 장벽이 철강과 석유, 자동차가 오가던 항로를 가로막는 가시적인 성벽이었다면,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장벽은 보이지 않는 데이터의 흐름을 옥죄는 디지털 보호주의라는 이름의 보이지 않는 그물망이다.
자국의 데이터를 영토 내에 묶어두려는 데이터 현지화 조치, 거대 IT기업을 겨냥한 디지털세 도입, 인공지능과 반도체를 둘러싼 기술 수출 제한은 이제 일시적 현상을 넘어 새로운 국제질서로 고착화되고 있다.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이 인류의 번영을 이끌 것이라 믿었던 디지털 세계화의 환상은 깨졌고, 이제 각국은 자국의 디지털 영토를 지키기 위해 창과 방패를 동시에 치켜들고 있다.
이러한 디지털 보호주의의 이면에는 데이터 주권이라는 명분이 자리한다. 데이터가 현대경제의 원유이자 안보의 핵심자산이 되면서 이를 외국기업이나 타국 정부의 손에 맡길 수 없다는 절박함이 투영된 결과다.
그러나 이러한 보호주의는 필연적으로 부작용을 동반한다. 국가별로 파편화된 규제는 글로벌혁신의 속도를 늦추고, 중복투자를 강요하며, 결국 서비스가격 상승이라는 청구서를 소비자에게 내민다.
특히 세계가 하나의 망으로 연결된 디지털생태계에서 특정 국가가 세운 장벽은 정보의 고립을 초래하고, 사이버범죄나 기후위기 같은 글로벌이슈에 대응하는 공동전선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이 혼란스러운 패권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이 가야 할 길은 명확하다. 우리는 강대국들의 자국 우선주의에 휘둘리는 수동적 존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과제는 디지털 통상 질서의 주도권을 쥐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양극체제에 종속되지 않기 위해 우리와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중견국들과의 디지털동맹을 공고히 해야 한다. 디지털경제 동반자협정과 같은 다자간 틀 안에서 데이터의 안전하고 자유로운 흐름을 보장하는 규범을 우리가 먼저 제안하고 설계해야 한다.
우리가 만든 표준이 세계의 표준이 될 때, 우리 기업을 가로막는 장벽은 오히려 글로벌시장으로 나아가는 문으로 변모할 수 있다.
동시에 대체 불가능한 기술력이라는 실질적 힘을 갖추어야 한다. 아무리 높은 장벽도 독보적 기술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인공지능과 반도체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소프트웨어 생태계에서 우리만의 독자적인 초격차 역량을 확보하는 것은 디지털주권을 수호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전 세계가 한국의 기술 없이는 디지털 전환을 완성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든다면 디지털 보호주의는 오히려 우리에게 유리한 협상카드가 될 것이다. 자국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폐쇄적 정책에만 매몰될 것이 아니라 기술적 우위를 바탕으로 글로벌시장의 중심부에 깃발을 꽂는 공격적 전략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내부적으로는 공정하고 건강한 디지털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힘써야 한다. 글로벌 빅테크기업들이 국내시장에서 누리는 이익에 상응하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도록 유도하여 국내기업과의 역차별을 해소해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자국 기업을 감싸는 보호무역이 아니라 시장의 공정성을 확립하는 정의의 문제다. 국내 플랫폼 기업들 역시 안방 호랑이에 머무르지 않고, 강화된 규제 환경을 오히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연마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디지털 보호주의라는 거센 파도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파도는 막아서는 자에게는 재앙이지만 올라타는 자에게는 목적지로 향하는 동력이 된다. 우리는 성벽을 쌓아 자신을 가두는 고립의 길 대신, 규범 설계자이자 기술 선도자로서 더 넓은 디지털 영토를 개척하는 항해사의 길을 택해야 한다. 장벽 너머에 펼쳐진 신대륙은 준비된 자의 몫이며, 한국의 디지털미래는 바로 그 담대한 항해의 끝에서 결정될 것이다.